실험실

노동이사제, 기업 안으로 들어온 민주주의 이야기

태천인 2024. 5. 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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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정치에서는 1인 1표, 사회 전반에서도 평등과 참여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성인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안에서는 민주주의가 멈춰 있다.

기업의 담장 안에서는 여전히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 즉 자본이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이 질문에서 출발한 제도가 바로 노동이사제다.

 

서울시가 던진 꽤 과감한 질문

서울시는 공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노동자가 단순히 지시를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내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시도다.

이건 단순한 인사 제도 변화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직장 안으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 프랑스는 1980년대에 공기업부터 근로자 임원제도를 도입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노동자 경영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시도는 뜬금없는 실험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검증된 흐름을 한국 현실에 맞게 적용해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에 민주주의가 가능할까?”라는 오래된 의문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노동자는 경영 전문성이 부족하다”,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같은 주장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뒤집어 보면 이렇게도 묻고 싶다.

과연 지금까지의 기업 경영은 충분히 효율적이고 공정했을까?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이미 오래전에 국가에 민주주의가 정당하다면, 기업에도 민주주의는 정당하다고 말했다.
노동자는 기업의 가장 핵심적인 이해관계자이자,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참여는 단기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독일은 왜 노동이사제를 유지하고 있을까

흥미로운 점은, 노동이사제가 “한물간 제도”라는 주장과 달리 유럽연합 다수 국가에서는 여전히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독일은 노동자 경영참여가 경제 위기 속에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독일의 위기 대응력 뒤에는 노동자 공동결정 구조가 있다고 분석했다.

즉 노동이사제는 이념이 아니라 위기 대응 전략이기도 하다.

혁신은 언제나 ‘다양성’에서 나온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같은 다양한 기업 형태가 빠르게 늘고 있다.
노동자가 소유자이자 경영자인 기업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런 시대에 “노동자가 이사회에 몇 명 들어오는 것조차 안 된다”고 말하는 게 과연 현실적인 태도일까?

혁신은 늘 다양성을 허용할 때 나타난다.

 

노동이사제는 기업 경영 방식의 정답을 강요하는 제도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를 하나 더 열어두는 실험이다.

지금 필요한 건 찬반이 아니라 ‘숙의’

노동이사제는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당연히 제도 설계, 역할 범위, 책임 구조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 제도를 이념이나 시기상조라는 말로 밀어낼 문제가 아니라, 혁신·다양성·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

 

기업의 담장 안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할지 묻는 이 질문, 이제는 외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음은 이 부분에 대해서 몇가지 아이디어를 정리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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